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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이면 풀려날 것” 등촌동 살인사건으로 본 가정폭력처벌법의 한계
김**  |  조회 510  |  2018-11-22

2018.10.27 17:55

[일요신문] 매일 올라오는 친족, 부부, 연인 사이의 흉악범죄는 범죄의 잔혹성이 상당함에도 더 이상 충격적이지 않다. 사회에 흉악범죄가 많아진 데다, 가정폭력이라는 이름하에 ‘저 집안에 무슨 사연이 있겠지’ 혹은 ‘막돼먹은 집안’ 정도로 여기는 경향 때문이다. 10월 22일 발생한 등촌역 살인사건은 가정폭력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재점화시켰다. 정치권과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에 무게가 실린다.  
 

등촌동 한 아파트에서 40대 이 아무개 씨가 살해된 채 발견됐다. 가정폭력에 끝내 이 씨가 숨지자 관련 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연합뉴스


10월 22일 오전 7시 16분,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이 아무개 씨가 발견됐다. 주차된 차들 사이에 쓰러져 있던 이 씨는 발견 당시 이미 숨진 상태였다. 범행도구로 사용된 흉기는 이 씨가 발견된 주변에 떨어져 있었다. 아침운동을 위해 집을 나선 이 씨는 새벽 4시 45분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운동을 나서자마자 공격을 받고 흉기에 찔려 숨진 것. 

경찰은 인근 CCTV 영상을 분석해 대번에 이 씨의 전남편 김 씨를 용의선상에 올렸다. 당일 21시 40분 김 씨는 서울보라매병원에서 긴급체포됐다. 김 씨는 살인을 저지른 뒤 술과 수면제를 복용하고 길에 쓰러져 보라매병원에 환자로 와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부 사이 살인이나 폭력이 매일 언론에 보도돼 등촌동 살인사건 역시 잠잠해지는 듯했다. 사안이 재점화된 것은 숨진 이 씨의 딸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부터다.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 피해자의 딸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이 씨의 딸은 자신의 아버지이자 살인 가해자를 사형시켜 달라고 청원했다.  

끔찍한 가정폭력은 이 씨와 세 딸을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참다못한 이 씨는 남편과 이혼했지만 4년 동안 살해협박, 다른 가족에 대한 위해 시도 등을 당했다. 법원은 접근금지 명령도 내렸지만 한낱 종이에 불과했을 뿐, 모녀는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숨진 이 씨는 늘 불안감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없었다. 유족 김 아무개 양에 따르면 어머니 이 씨는 보호시설을 비롯해 다섯 번이나 거처를 옮겼다. 그럼에도 아버지 김 씨는 온갖 방법으로 엄마를 찾아내 살해 위협을 했다. 

유족에 따르면 김 씨는 늘상 “엄마를 죽여도 6개월이면 풀려날 것”이라고 말해왔다. 심신미약이나 여러 가지 감형 요인을 활용할 수 있다며 법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도리어 이를 이용할 만큼 치밀한 사람이라는 게 피의자로 지목된 김 씨에 대한 유족의 평가다. 경찰 수사 결과 김 씨는 위치추적기(GPS)를 피해자 차량 뒷 범퍼 안쪽에 몰래 달았다. 동선을 파악한 김 씨는 가발까지 준비해 아침운동에 나선 전처에게 접근했고, 흉기로 수차례 이 씨를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씨는 경찰에서 자신의 범죄를 시인했다.

혈연으로 이어진 가정 내 흉악범죄가 날로 기승을 부리자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가부장제 문화로 인해 가정 내 가장의 폭력과 폭언, 의사결정권 독점은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여겨져 왔다. 여기서부터 가정폭력 문제가 출발한다는 것. 정의당은 26일 즉각 브리핑을 내고 “가정폭력의 근본 원인은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가정폭력을 단순히 ‘집안싸움’으로 치부하며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아서다”라고 발표했다.  

‘가정폭력’은 개입해서는 안 될 다른 집 담장 안의 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가정이라는 이름 하에 가족 내 발생하는 범죄를 덮어주고, 피해를 입어도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폭력의 유형은 사회에서 발생하는 것과 같이 물리적 폭력 외에 정신적 폭력을 모두 포함한다. 경제적 학대, 정서적 학대, 위협, 자녀를 이용한 협박, 가장의 권위를 이용한 권력남용 등이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가정폭력 중 경찰에 신고되는 것은 100건 중 2건이 채 되지 않는다. 가정폭력범죄 기소율은 8.5%, 구속율은 0.9%로 경찰에 신고를 해도 사실상 거의 처벌되지 않고 있다.  

경찰에 신고만 하면 해결될까? 가족을 범죄자로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만, 신고를 한다고 해도 가정폭력이 해결되기는 쉽지 않다. 훈방조치 내지는 잘해봐야 접근금지명령이 떨어지는 수준이다. 경찰에 신고하기보다 피해자가 숨죽이고 참는 것을 선택하는 이유다.  

문제는 법 때문이다. 가정폭력 문제는 다른 법에 우선해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을 적용받는다. 1997년 제정된 가정폭력처벌법은 설립 근거가 파괴된 가정의 안정을 회복하는 데 있다. 어떻게든 가정을 다시 잘 가꾸어 가도록 하는 것이 법 제정 제1의 목표다. 폭력을 저질러도 형사처벌보다는 교화를 통해 가정 구성원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 경찰이 범죄사실을 인지해도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고소를 진행한다. 

물론 피해자를 보호하고 폭력 재발방지를 막기 위해 판사가 임시조치를 내릴 수도 있다. △피해자와의 격리 △피해자 주거지, 직장 등에서 100미터 이내 접근 금지 △피해자에 대한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등이다. 임시조치기간은 2개월까지다. 다만, 피해자의 보호를 위해 기간 연장 필요가 있을 경우 임시조치를 두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종이에 불과한 임시조치와, 법적으로 그 조치마저 두 차례까지 연장할 수 있는 것이 현재 가정폭력처벌법의 한계다. 날로 잔혹해지는 범죄를 막기는커녕, 치밀하고 잔인한 가족 내 범죄자를 양성하는 데 악용된다. 


이금형 전 경찰대학 학장은 “현장에서 가정폭력 사건에 출동해보면 가해자인 가장이 ‘간섭 말라’고 도리어 큰소리를 친다. 사회적으로 가정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해 관련 법이나 해결에 미온적인 탓이 크다”며 “폭력에 노출된 자녀가 사회에 나왔을 때 가정폭력을 대물림할 가능성이 커 악순환이 반복된다. 가정폭력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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