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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6월형 받고 11년 넘게 갇혀 산 이유…‘지적장애인’이라서
김**  |  조회 48  |  2021-01-22

왜 국가 상대로 소송 결심했나


“답답하고 억울하고….”

지적발달장애인 진우씨(가명)가 20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말했다. 그는 2009년 9월 1년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공주치료감호소(국립법무병원)에서 11년4개월간 수용됐다. 선고받은 형기의 약 8배 동안 더 갇혀 있었던 셈이다. 지난 4일 치료감호 가종료 통보를 받고 세상으로 나왔다. 그는 “밖에 나가 일을 하고 싶었고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심신장애인이 범죄를 저지르면 교도소 대신 치료감호소에 수용된다. 그들은 신체의 자유가 제한된 가운데 치료를 받는다. 치료감호소 수용 환경은 교도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법무부에 따르면 수용자 1인당 수용면적은 4.9㎡(약 1.4평)이다. 한 공간에 10명 이내로 수용된다.


진우씨는 10년 가까이 법무부에 치료감호 종료를 신청했지만 번번이 이유도 모른 채 떨어졌다. 지난해 12월 인권위에 치료감호를 종료해달라는 진정을 냈다. 진우씨 법률대리인인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근본적 치료가 불가하고 치료 필요성이 없는 지적장애인인 진우씨가 11년간 치료감호를 받은 건 치료감호법 위반이며, 지적장애인에 대한 차별 행위”라고 말했다. 치료감호법에 따라 치료감호 대상자는 ‘치료의 필요성’과 ‘재범의 위험성’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지만 진우씨의 경우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진우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예정이다. 최 변호사는 “치료의 필요성이 없는 진우씨에게 치료감호 선고를 한 법원과 11년간 치료감호 종료를 하지 않은 법무부 치료감호심의위원회의 결정이 위법하다는 점을 밝히고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장 15년…어떤 약 먹는지도 모른다

심신·정신성적 장애인, 중독자 등
치료 필요성·재범 위험성 인정 때
교정시설 대신 치료감호소 수용
현재 1002명 중 지적장애인 88명
이유도 모른 채…최장 15년 수용


1980년부터 도입된 치료감호제도는 범죄를 저지른 심신장애인이나 약물 등 중독자, 정신성적 장애인 중에서 재범의 위험성과 치료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사람을 교정시설 대신 치료감호소에 수용해 보호와 치료를 하는 것이다. 교정시설처럼 신체의 자유가 제한되는 자유박탈적 처분이다. 지난 15일 기준 1002명이 유일 치료감호소인 공주치료감호소에 수용돼 있다.

치료감호제도는 수용 기간이 선고받은 형기에 비해 지나치게 길어질 수 있어서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고 지적돼 왔다. 치료감호는 사실상 구금과 같아서 과잉 처벌에 해당될 수 있다. 진우씨와 같이 형을 감경할 수 있는 심신장애인으로서 금고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사람인 ‘1호 처분자’는 최장 15년까지 치료감호소에 수용될 수 있다. 수개월 정도의 징역을 선고받아도 15년까지 수용하는 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셈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1호 처분자의 평균 수용 기간은 약 5년9개월이다. 약물 등 중독자인 ‘2호 처분자’는 2년까지 수용될 수 있고, 평균 수용 기간은 약 8개월이다. 성적 성벽이 있는 정신성적 장애인인 ‘3호 처분자’는 15년까지 수용 가능하고 평균 수용 기간은 약 8년5개월이다.


“어떤 치료 받았는지 본인 모르고
보호자에게 정보 공개도 안 돼”
10년 동안 종료 신청 계속 냈지만
지난해 인권위 진정 뒤에 ‘가종료’
“그간 기각 사유 제대로 통보 안 해”


치료감호소에서 수용자를 상대로 어떤 치료와 처치가 이뤄지는지 외부에 비공개된다는 점도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 수용자가 지적장애인일 경우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는지 알기 힘들다. 진우씨는 가족에게 “치료감호소에서 매일 한번씩 약을 먹는다”고 했지만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진우씨를 지원하는 안영주 강원도 장애인종합복지관 상담사례지원팀장이 진우씨가 먹는 약이 무엇인지 치료감호소에 문의하자 “당사자가 아니라서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치료감호소 퇴소 후 진우씨가 입원한 병원은 치료감호소가 전해준 처방전이라며 그에게 ‘설트랄린’을 처방했다고 한다. 설트랄린은 우울증 환자 등에 쓰이며 지적장애와 직접적 연관은 없다.

“치료감호소가 진우씨에게 처방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야죠. 아니면 이를 진우씨에게 잘 전달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알려줘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어요. 아직도 저도, 진우씨 가족도 진우씨가 11년간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전혀 몰라요.” 안 팀장이 말했다. 법무부는 진우씨의 처방에 대해 “치료감호소 주치의의 약물 처방은 전문적인 의학적 판단에 의해 이뤄진 의료적 처우”라며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외부에 공개가 어렵다”고 밝혔다.

치료감호 종료 신청 기각 사유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는 “신청 당사자인 심신장애인 등에게 고지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형식적인 전달에 그친다는 것이다. 안 팀장은 말했다. “진우씨는 자신이 왜 치료감호소에서 나올 수 없는지 잘 알지 못했어요. 제가 (진우씨의) 배우자를 통해서도 물었지만 당사자가 아니라서 말해줄 수 없다고 했죠.” 진우씨 측은 병원의 조언을 받아 신청서 내용을 조금씩 계속 보강했다. “‘퇴소하면 병원을 열심히 다니겠다, 엄격히 관리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보내겠다, 병원 허락도 받았다’…. 이렇게 여러번 고쳐가며 신청서를 썼지만 계속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어요. 치료감호소 측에서도 진우씨에게 별문제가 없는데 이유를 알 수 없대요.”

법무부는 “치료감호시설의 장 등을 통해 진우씨에게 기각 사유에 대해 고지해왔으며, 별도 신청 시 법정대리인에게도 등기로 송달했다”고 밝혔다. 또 “그동안 심사에서 불합격한 이유는 피해자와의 분리 필요성, 치료 경과, 보호자의 보호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이번 심사에서는 보호자의 보호력, 피해자와 분리가 가능한 점, (외부) 병원 치료가 예정돼 치료가 계속될 수 있는 점을 확인해 허가를 결정했다. 인권위 진정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치료감호 종료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 기준이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법무부 치료감호심의위는 진우씨가 수감된 지 11년 만인 지난해 12월28일 치료감호 가종료를 결정했다. 진우씨가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지 약 보름 만이다. 안 팀장은 “그동안 썼던 치료감호 종료 신청서와 이번에 제출한 신청서는 크게 달라진 내용이 없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심사 건수가 많아 충실한 심사가 이뤄지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치료감호심의위는 매월 한 차례 치료감호 종료 여부를 심의한다. 치료감호심의위가 지난해 심사한 건수는 총 2195건이다. 매월 심의 한 번에 약 182건을 들여다본 셈이다. 인권위는 2016년 4월 법무부 장관에게 “물리적으로 지나치게 많은 건수를 한꺼번에 심사하는 것이어서 충실한 심사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의문이 제기된다”며 개선을 권고했다. 종료·가종료 결정 건수도 미미하다. 작년 가종료 결정 건수는 186건(8.4%)에 그쳤다. 작년 12월28일 개최된 치료감호심의위에서는 대상 203명 중 16명만 가종료 결정이 내려졌다.

근본적 치료가 불가능하고 불필요한 지적장애인에 대해 치료감호제도가 적용되는 것도 문제로 꼽혔다. 치료감호법에 따르면 치료감호 대상자는 재범의 위험성과 치료의 필요성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 최 변호사는 “의학적으로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한 지적장애인은 치료의 필요성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치료감호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지적장애 자체보다 2차적 정신질환과 후유증 및 사회적응에 대한 치료가 필수적이다. 범죄를 저지른 지적장애인의 경우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최 변호사는 진우씨가 성범죄를 저지른 것과 관련해 “지적장애인의 성인지에 대해서는 치료가 아니라 장애·발달 단계에 맞춰 성교육과 상담을 통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진우씨는 일정 기간 강제력을 수반하는 감호 상태에서 치료받아야 할 사정이 명백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치료감호는 명백히 필요한 경우만”

전문가들은 치료감호 결정은 재범의 위험성과 치료의 필요성이 명백히 판단될 경우에만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서울고법은 2007년 6월 치료감호 선고를 위해선 “재범의 위험성과 아울러 치료감호시설에서의 치료 필요성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피감호청구인이 일정한 기간 강제력을 수반하는 감호 상태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사정이 명백한 경우에 한해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장승일 전남대 박사는 논문 ‘정신장애범죄인에 대한 치료감호제도의 현황과 개선방안’에서 치료감호제도가 범죄자와 정신장애자라는 중복 낙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를 막기 위해 “정신장애 범죄자에게 자유박탈적 치료 처분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치료감호를 명하지 말아야 한다는 선언적 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장창현 느티나무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치료감호소 치료에 보호자가 관찰·개입할 수 없는 점을 볼 때, 치료감호소에 있는 발달장애인들이 얼마나 치료에 있어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치료 모니터링 시스템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안 팀장은 말했다. “지적장애인이라도 범법행위를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건 마땅해요. 그런데 진우씨는 치료감호소에서 죄를 반성했고 모범적으로 생활했는 데도 11년이나 있었어요. 진우씨가 나오지 못하는 명확한 근거도,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도 몰라 답답해요. 다른 발달장애인 분들도 치료감호소에서 적절히 감호받고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15일 기준 치료감호소에 수용된 지적장애인 수는 88명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101210600075#csidxc52e05b296c749c9acc081b8e0cc8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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