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마당
아이 탓도 부모 탓도 아니에요
김**  |  조회 25  |  2018-11-22

내 아이가 자해한다면? 무신경한 개입도, 과도한 자책도 금물

등록 : 2018-11-19 09:02 수정 : 2018-11-19 13:15   한겨례신문

 엄마 아빠, 호들갑 떨지 말아주세요!”

자해하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간절히 원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침착’이다. 자녀의 자해 사실을 알았을 때, 부모가 “네가 어떻게 부모한테 이럴 수 있냐”며 울고 소리 지르며 아이의 휴대전화를 빼앗고, 날카로운 물건을 치우고, 시도 때도 없이 아이를 ‘검사’하며 쫓아다니는 건 아이를 궁지로 모는 전형적인 반응이다.

최지욱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홍보이사(가톨릭의대 대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겨레21> 인터뷰에서 “부모도 아이의 상처를 보면 흥분하기 때문에 과잉반응을 보이면서 질책하게 되는데, 그러면 아이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부모가 자해하는 아이를 도우려면,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해가 뭔지 아이의 자해를 촉발한 것이 무엇인지 ‘편견’을 내려놓고‘지식’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자해와 자살 시도는 다르다


 

<정신장애진단 및 통계편람 제5판>(DSM-5)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정신과 전문의와 연구자들이 정신장애 진단에 사용하는 기준이다.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발간한 이 편람을 보면 ‘비자살성 자해’(죽음을 목적으로 하지 않지만 고의로 자신의 신체 조직을 훼손하는 행동)는 아직 ‘병’이 아니다.

칼로 긋기, 불로 지지기, 찌르기, 과도하게 문지르기 등 자해기준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병리로 규정하지 않고 ‘연구 여지’를 남기고 있다. 황준원 강원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자해는 예전부터 흔한 현상이었지만 성격장애진단 기준에 자해가 있었을 뿐 정신과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다”며“2010년께부터 ‘칼빵(칼로 자해)하면 속이 시원하다’거나 ‘엄마한테 혼나고 수치심 때문에 그었다’는 아이들이 새롭게 부각됐고, 2017~2018년 청소년 자해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자해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자해하는 모든 아이가 자살하고 싶어 한다’고 오해하지만, 전문가들은 비자살성 자해와 자살 시도는 다르다고 구분한다. 비자살성 자해는 심리적 고통에서 일시적으로 도피해 기분을 좋게 하려는 의도를 가진 반면, 자살시도는 참을 수 없는 심리적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위해 삶을 끝내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황 교수는 “자해하면서 오히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잊어버린다는 아이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자해를 질병으로 분류할 수 없고, 꼭 죽으려는 의도로 자해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해하는 아이들이 스스로 나아질 때까지 가만히 내버려둬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최 교수는“한 아이가 관심 끌려는 목적,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려는 목적, 죽고 싶은 목적을 다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며 자해를 하나의 의미로 단정 짓는 해석을 경계했다. 더욱이 ‘지금의 자해’는 ‘미래의 자살 시도’를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아이의 자해 사실을 알았다면 최소한 한 번은 전문가에게 철저한 ‘자살 평가’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자살 의도가 있거나 우울증과 트라우마 등 다른 질병과 동반돼 자해한 경우 지속적인 치료와 상담을 받아야 한다.

자해의 원인은 다양하고 원인이 같더라도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원인을 그대로 개인화하는 것은 무리다. 문현호 수원우리동네정신건강연구소 연구원은 30명이 수업을 받는 교실에 갑자기 공이 하나 날아온 상황을 비유로 들었다. 아이들 30명이다 똑같은 반응을 보이진 않는다. 무덤덤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살짝 짜증을 내는 아이가 있고, 어떤 아이는 뛰쳐나가서 공 던진 사람을 잡아죽일 듯 반응하기도 한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아이의 생물학적 취약성(감정적 민감성) 등 여러 변수에 따라 자해를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더라도 자해의 일반적 원인을 살펴보면 ‘내 아이’에게 필요한 치유의 방법을 찾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마이클 홀랜더 교수는 저서 <자해 청소년을 돕는 방법>(안병은 외 옮김)에서 자해의 세 요인을 꼽는다. 첫째, 압도적인 감정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거나 혼란스러운 상태를 조절하기 위해. 둘째, 무감각하고 공허한 존재라는 끔찍한 느낌에서 도망치기 위해. 셋째, 자신에게 벌을 내리기 위해.

진통제로서 자해

자해하지 않는 어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아이들은 이런 감정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통제·진정제·안정제로 자해를 선택한다. 자해의 ‘기능’이 있다는 뜻이고, 아이들이 쉽사리 자해를 그만두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상처가 날 때 몸에서 조직 손상과 고통을 견디게 하는 특정한 화학물질이 분비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체했을 때 손을 따 피를 내면 순간적으로 시원해지는 경험을 떠올려보면 된다. 하지만 자해도 마약처럼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수준의 안정을 얻기 위해 더 자주 몸에 상처를 입혀야 한다. 자해를 멈추게 하려면 아이들이 자신을 진정시키고 안심시키는 ‘건강한 방법’을 찾도록 도와야 하는 이유다. 홍현주 한림대 ‘자살과 학생 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은 “자해는 10·20대 때의 미성숙한 문제 해결 방식으로, 다른 표현 방법을 알게 되면서 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검증된 전문가의 도움은 자해를 멈추게 하는 빠르고 정확한 길이지만, ‘자해하는 자녀를 의사나 상담사에게 데려가기만 하면 부모로서 할 일을 다 한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안병은 ‘행복한우리동네 의원’ 원장(수원시자살예방센터장)은 “말없이 이야기를 들어주던 엄마,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저 눈물만 흘리던 엄마 때문에 자해를 멈추게 된 아이도 있다”며 정서적인 지지와 인정의 공급자로서 부모의 절대적인 존재감을 설명했다. 아이들이 뒤돌아봤을 때 부모가 버티고 서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치료 효과에도 천양지차를 보인다.

‘인정’(Validation)은 치료자는 물론 부모에게도 자해하는 아이들과 소통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정서적으로 취약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인정이 필요하며, 변증법적 행동치료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안타깝게도 홀랜더교수는 “부모에게 가르치기 가장 어려운 기술이 인정”이라며 “부모는 문제 해결자가 되기를 바라는데, 인정은 문제 해결 전략이 아니라 오히려 수용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자녀의 감정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게 부모들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경기도교육청 학생위기지원단의 <자해 행동을 보이는 학생을 돕기 위한 교사용 가이드북>(이하 <가이드북>)을 보면 “인정이란 다른 사람의 관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개념으로, 당신이 다른 사람의 경험을 그의 입장에서 본다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정한다는 것은 부모가 아이의 경험을 잘 안다는 것을 아이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 경험을 좋아하거나 거기에 동의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부모와 아이의 입장이 다르더라도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 수 있다.

부모가 시도해볼 만한 인정의 방법 중 하나로 ‘주의 깊은 경청’이 있다. 자세·눈 맞춤·집중을 통해 아이의 말을 들어주면서, 부모가 아이의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 경우 부모가 아이 말의 옳고 그름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감정적으로 흥분한 아이가 “내가 너무 싫어!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어!”라고 외칠 때, “그건 너무 지나친 생각 아니니?”처럼 판단 내리는 건 인정이 아니다. “너 정말 이 문제로 많이 괴로워하는구나. 엄청 힘들겠다.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을까?” 이런 식으로 아이의 고통을 인정하면, 아이는 오히려 격해진 감정을 가라앉히고 “별로 없어요. 저 스스로 이겨낼 수 있어요” 이렇게 반응할지 모른다.

‘그러나’ 말고 ‘그리고’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직장 상사가 실컷 나를 인정해준 뒤“그러나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그러나’ 앞의 말들이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걸 금세 눈치챌 수 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자신을 인정해주는 듯하다가 “그러나 (네가 틀렸다)”라고 말하면 인정과 지지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홀랜드는 ‘그러나’ 대신 ‘그리고’를 쓰라고 조언한다.

“엄마 아빠가 너만 했을 때 말이야”로 시작하는 회고와 극복 서사도 아이한테는 듣기 싫은 소음일 가능성이 크다. 자해하는 자녀가 친구 때문에 고통받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부모들은 “네 기분이 어떨지 잘 알아. 엄마가 네 나이였을 때, 똑같은 일을 겪은 적 있거든” 이런 식으로 자기 경험을 들려주며 자녀를 돕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아이와의 대화에서 부모의 경험을 언급하면, 아이에게 집중하기보단 부모 자신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게 된다. 차라리 “네가 화날 수밖에 없겠구나. 언젠가 네가 이일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 예전에 엄마친구가 엄마를 배신했을 때 어떻게 했는지 말해주고 싶어” 정도로 마무리하는 게 좋다.

역설적으로 아이의 말을 인정해주면 안 될 때도 있다. 가령 자기혐오가 강한 아이가 “밤새워 공부했는데, C예요. 저는 우리 학교에서 제일 멍청한 아이예요”라며 흐느낄 때 “네가 학교에서 제일 멍청한 아이일 수도 있지만, 아빠 엄마는 여전히 너를 사랑해” 같은 인정은 연소성 높은 휘발유에 가깝다. “이런 성적을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너의 능력을 의심한다는 걸 이해해” 정도로 아이의 감정만 인정해주는 게 현명하다.

자해하는 아이들로부터 검증된, ‘해서는 안 되는 말’과 ‘해주면 좋은 말’ 용례도 있다(표 참조). “왜 하냐?” “관종(관심종자)이냐?” “의지가 약해서 그런다” “너보다 힘든 사람 많다” 등 아이의 고통을 무시하는 말은 금기어다. 반면 “괜찮아, 자해할 수도 있지” “그랬구나, 힘들었구나” “자해를 해서 편해진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힘들 때 칼 대신 나를 먼저 찾아줘” 등은 큰 위로와 힘이 되는 말에 해당한다. 자신을 해한 아이 앞에서 충격과 슬픔으로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면, 차라리 조용히 아이의 말을 들어주거나 함께 울어주는 것이 열 마디 말보다 낫다.

감정이 민감한 아이를 돕는 데 인정해주는 말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말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전문가들은 감정 조절 능력을 키우고 자해를 그만둘 수 있는 실질적인 ‘기술’을 사용하는데, 부모들이 아이를 도울 때 참고할 만한 방법도 있다.

자해하는 아이들은 태생적으로 감정적 고통에 약한 경우가 많다.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면 호흡이 가빠지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다량 분비된다. 편안한 호흡법을 가르쳐주면 스트레스로 인한 교감신경(심장박동 증가·혈압 상승 등 위급한 상황일 때 대처하는 기능)의 작용을 완화하고 부교감신경(심장박동감소·동공 수축 등 에너지를 보존하는 기능)의 작용을 활성화 해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킬 수 있다. <가이드북>에서는 자해 욕구가 올라올 때 활용할 수 있는 호흡법을 소개하고 있다.

“자세잡기: 눈을 감고 앉거나 누운 자세에서 몸의 힘을 빼고 천천히 호흡에 집중한다. → 들숨: 코로 숨을 들이마시면서 가슴을 최대한 열어준다. → 날숨: 코로 공기가 다 빠져나갈 때까지 여유를 가지고 숨을 내보낸다. → 이 과정을 10회 정도 반복한다.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감각을 깨우고 기지개를 켜며 눈을 뜬다.”

자해보다 건강한 ‘감정 조절’ 기술들

오감을 이용한 자기 진정 방법도 있다. 소리(진정이 되는 음악듣기), 냄새(향수나 향초, 입욕제를 사용한 목욕), 접촉(마사지, 따뜻한 목욕, 찬물 샤워), 입(껌 씹기, 얼음물 마시기, 얼음 씹어먹기), 동작(걷기, 운동, 베개 치기, 신문이나 잡지 찢기, 고무찰흙 주무르기, 춤추기) 등이 해당한다.

이 밖에 변증법적 행동치료에서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같은 부정적 생각을 ‘괜찮아. 이번 일로 모든 걸 그렇게 판단해버릴 필요는 없어.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는 거야’라는 긍정적 생각으로 바꾸는 연습, 의사소통을 잘하도록 이끌어 대인관계 기술을 높이는 기술도 알려준다. <한겨레21>(제1237호)과 인터뷰한 자해했던 고교생 연우(가명)는 “운동이 좋긴 하지만 운동도 하던 애들이나 하는 거고,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나랑 안 맞으면 소용이 없다. 나는 양팔을 교차해 가슴에 대고 나 자신을 토닥토닥해주거나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고 각자 잘 맞는 진정법을 찾아보라는 조언이다.

자해하는 아이들은 자신에게 극단적으로 비판적이고 엄청난 혐오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완벽주의 성향을 보이며, 자신이 경험하는 느낌이 무엇이든 간에 틀렸다거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긴다. 자신이 늘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자기비판을 하며 자기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고 여긴다. 자해는 그 벌을 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자기혐오’가 아이들을 자해로 이끄는 주요 요인이라는 점을 알았다면, 부모 역시 자녀의 자해에 과도하게 자책하거나 자기에게 벌주는 일을 피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기도 수월할 것이다. (물론 가정폭력·성폭력 등 아동학대로 자녀의 심리적 고통에 명백하고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가해 부모한테 적용되는 기준은 아니다) 최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청소년기에 자해한 그룹을 모아서 10년 이상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자해는 아이의 잘못이나 부모의 탓이 아니다’라는 점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감정을 세게 느끼거나 반응성이 큰 것 같은 정서적 취약성은 타고난 것일 뿐 아이의 잘못이 아니며, 부모 역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의 특성에 맞춰 양육하지 못할 수 있다. 두 가지의 상호작용으로 자해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라는 설명이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아이에게 도움을 주려면 부모가 먼저 자기를 돌보고 강해질 필요가 있다. 정운선 경북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출산 연령이 높아지면서 자녀의 사춘기와 부모의 갱년기가 맞물려 부모 역시 자녀를 도와줄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고, 요즘 중년은 회사에서도 예전 중년보다 훨씬 할 일이 많다”며 사춘기 자녀를 둔 ‘요즘 부모’들이 더 힘들 수밖에 없는 사회적 배경을 설명했다. 홀랜더교수는 “(부모 역시) 균형 잡힌 수면, 건강한 식단, 적당한 운동, 지나친 음주를 피하는 것이 부정적 감정에 민감해지는 것을 줄여준다”며 “자해하는 아이의 부모와 만날 때, 나는 그들의 삶에서 스트레스 수준을 낮추는 노력을 하는지 묻는다. 만약 그들이 즐기던 것들을 거의 다 포기했다고 하면, 다시 하라고 권한다”고 조언했다.

글·사진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의견나누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