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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그 반인륜적 범죄의 근절을 기원하며
이**  |  조회 265  |  2019-07-18

펜은 칼보다 강하고 영상은 펜보다 더 강하다. 베트남 아내 폭행영상은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켰고, 경찰청장과 총리가 베트남 고위관계자에게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피해자가 성차별과 외국인차별이 중첩된 약자였기에 인권침해가 더 부각되었고, 두살배기 앞에서 엄마를 무차별 구타하는 장면은 가정폭력을 사랑싸움이 아닌 반인륜적 범죄로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정폭력은 비단 이주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작년 한 해 약 25만건의 가정폭력이 신고되었다. 피해자가 가정과 자녀를 지키고자 신고를 꺼리는 점을 감안하면 가정폭력은 더 많을 것으로 추단된다. 그 실상 또한 영상보다 심한 경우가 많아 칼 등 흉기나 둔기를 사용하여 자상, 골절상을 입히고 살해하기도 한다. 한국여성의전화의 분석에 따르면 남편, 전 남편, 애인에 의해 살해된 여성의 수는 2017년 한 해 85명에 이르며, 매년 비슷한 수의 여성이 같은 경위로 목숨을 잃는다.

 

이처럼 가정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한 해 수십명이 목숨을 잃는데도 이제껏 고위관계자가 나서서 사과하는 것을 보지 못한 것 같다. 그간의 피해자들을 위하여는 함께 공분할 국민들도, 사과를 하거나 받을 사람도 없었던 것인지 안타깝고 형사사법기관의 일원으로서 송구스럽다.

 

가정폭력의 심각성은, 그것이 수년 혹은 수십년간 지속되면서 가해자의 가정폭력 습벽과 피해자에 대한 지배욕이 고착되어, 이를 벗어나려는 피해자를 스토킹하며 폭행·협박하거나 종국에는 살해하기도 한다는 데에 있다. 자녀들에게 폭력성향을 대물림하거나 깊은 정신적 상흔을 남기기도 한다. 가정폭력은 칼로 물베는 부부싸움이 아니라 영혼을 파괴하고 목숨까지 벨 수 있는 심각한 범죄이다. 자신이나 가해자의 죽음으로만 벗어날 수 있다면, 국가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이 가정폭력을 범죄로 보면서도 범죄의 무대인 가정의 회복을 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중한 가정폭력의 경우 이미 가정의 회복은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신속하게 가정을 해체하여 피해자의 인권과 생명권 보호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가정폭력은 초기 대응이 중요한바, 현재 응급조치로 ‘가해자·피해자 분리’를 하고 있으나, 가해자 스스로 집을 나가지 않는 한 피해자를 쉼터 등으로 안내할 뿐이라 한다. 응급조치가 오히려 피해자를 주거로부터 축출하는 셈이다. 퇴거나 접근금지 등 법원의 임시조치 위반에 대한 제재도 과태료 500만 원에 불과하다. 미국 여러 주에서 가정폭력의 주공격자에 대해 시행하는 ‘의무체포 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8년 신고 대비 입건률은 약 17%이고 그 중 기소율은 10%대로, 반의사불벌제에 주 원인이 있어 보인다. 국가가 더 이상 피해자의사에 기대지 말고 가정폭력에 대한 무관용원칙을 견지하여야만 이 범죄가 근절될 수 있겠고 피해자가 우려하는 보복, 생계곤란, 양육권상실은 실효적인 접근차단, 경제적 지원, 가해자의 양육권 배제 등을 통해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작년 말 관계기관 합동 ‘가정폭력 방지 대책’이 발표되었고 여러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쌓여 있다. 우리 사회가 늦게나마 가정폭력의 심각성에 눈뜨게 된 이 때에, 가정폭력을 적시에 차단하고 엄정하게 처벌하며 피해자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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